계약론적 전통에서의 국가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의 이익, 즉 공동선(common good)을 위해 합의하여 만들어낸 고안물이다. 따라서 국가는 계약의 범위 안에서만 유효하며 자신을 창출해낸 사회 구성원들 모두를 위해 봉사하는 공복(公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일단 ‘모두의 이름으로’라는 대의명분을 갖고 활동할 수 있게 되자마자 사회 구성원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다. 즉 공동선을 위해 개개인의 권리를 일정 정도 제한할 수 있는 권리가 국가에 주어진다.
2. 토마스 홉스의 계약론적 국가론
계약론적 전통의 역사는 토마스 홉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를 계약론의 전형으로 취급하기에는 몇 가지 난점들이 존재한다. 주지하듯이 홉스는 중앙집권적인 군주제가 확립되고 군주권이 신권으로부터 분리되어나가는 시대에 살았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그는 왕권신수설과 보통법적 시민권을 모두 거부한다. 그는 중세적인 신권론, 즉 ‘기독교의 수동적 복종’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계약에 일종의 신성성을 부여하고 국가를 유일한 주권자로 취급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로크가 계약론의 대변자로 다루어진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에 대한 홉스의 견해는, 동일한 능력과 욕구를 지닌 주체들을 전제하고 그로부터 중립적 국가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계약론적 전통의 전형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본 논문에서는 계약론의 이중적 특성, 즉 국가를 필요악으로 간주하고 시민적 주체에 모든 권한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다수의 동의를 근거로 한 강력하고 전횡적인 국가를 인정하는 계약론의 특징에 주목하고자 하는 바, 홉스는 이와 같은 계약론적 전통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