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역할은 스스로 지배 이데올로기의 구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피지배 이데올로기를 과학의 도움을 통해 단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인 입장은 알뛰세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이전에 알뛰세는 과학은 자신의 내적인 기준을 지니고 있기에 다른 외적인 보증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와 관련된 모든 지식을 과학적인 인식에 기초해서 수립하려고 했던 근세 과학주의의 반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뛰세는 비록 과학적 지식 자체는 다른 사회적 실천에 의존할 필요는 없지만 다른 사회적인 실천, 특히 정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학적인 지식을 이용 exploitation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SPS.p.120-131) 다시 말해서 실천적 이데올로기는 과학적인 지식을 이용해서 이론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학과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을 카톨릭 신학과 결합시켜 만든 중세 후기의 우주론은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론적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비록 과학적인 지식이라 할지라도 그 관념들이 사회 속에서 역사적으로 존재할때, 그 관념들은 오직 -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와 여타의 종속적 이데올로기라는 - 사회적 세력관계의 물질성과 결합되어 실존한다 (SPS.p.210) 따라서 과학은 사회 속에서 나약하다. 과학은 스스로는 다른 실재적인 생산적인 심급에 의해서 착취당할 가능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과학은 그 내부의 지식의 생산 구조를 지니고 지식을 생산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지식은 순전히 지식과정 안에서 머무는 것이지 현실의 세력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이데올로기적인 실천은 다른 경제적 실천이나 정치적 실천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세력관계를 이루는 실재의 실천활동 자체이며 이는 자신을 이데올로기적 철학의 범주를 통해서 과학을 착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