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는 그의 초기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狂氣와 文明’에서 소위 서양인의 의식세계와 경험에 있어서 이성이라는 것이 언제 정확한 양태로 출현했는가를 보여 주면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이 이성적 주체이고 자유의지에 의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한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는 그는 이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되지 않는 것, 또는 수상쩍은 것, 불가사의한 것들을 뭉뚱그려서 우리가 비이성적 범주에 집어 넣을 수 있다고 보는데 푸코는 이러한 이성과 비이성의 분리라고 하는 현상이 서양의 경우에 17C에 비로소 커다란 사회적인 흐름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2. 미셸 푸코의 이성비판
푸코는 이성의 형성사라는 관점에서 1656년 1793년을 대단히 중요한 시점으로 설정한다. 1656년은 소위 종합병원이라는 대감금시설이 유럽 전역에 걸쳐 건립되기 시작한 해이며, 1793년은 의료개혁가인 프랑스인 피넬이 비세뜨리 정신병원에서 인도주의적인 의료개혁을 실천한 해이다. 그때까지 광인을 치료하는 방식이었던 무자비한 구타나 고문을 그만두고 인도주의적으로 접근해야 된다는 주장을 실천한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러한 인도주의적인 개혁이 야만적이고 효과를 거두지 못한 방식을 바꾸어, 처벌의 목표를 육체에서 정신으로 전이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인도주의적 정신병동의 개혁이 결국 정신병자들의 행위 양태에 대한 기록이나 조사, 그리고 검사들을 동반하게 되면서 당시에 통용되는 가치 규범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주입시키려는 시도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행해 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