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고대문명》
漢代(한대)의 유교건축물에 대하여
종묘
한(漢) 이전 시대의 종묘는 혼이 찾아가는 장소라는 옛 관념에서 출발하여, 시간이 지나 혼이 실제로 사당에 머무른다고 믿었다. 종묘에 제기와 희생물을 늘어놓아야 조상들의 혼령을 불러낼 수 있다는 옛 생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 대신 무덤에 혼이 묵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의 기본적인 제례 의식이 되었다.
더구나 한 왕조가 선 뒤 무덤 건축은 더욱 정치적, 제례적인 의미가 강조되었다. 한고조와 그의 장수들은 종묘제사의 특권을 갖지 못했던 평민출신이었다. 전한의 황제들이 능묘를 짓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옛 제례규범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에 거의 주저하지 않았다. 전당, 군주의 침전, 부인들의 방, 관청, 그리고 거대한 궐문 등 다양한 궁전의 부속요소들이 그대로 능원에 옮겨졌다. 아직도 여산릉 지하에 묻혀 있는 입체적 형상들이 지상의 신도 옆에 세워졌다. 마치 죽어서도 관리와 장수들이 군주에 충선을 바치는 것처럼, 황실과 관리들의 배총이 황제의 무덤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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