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그때부터 내게 이 영화는 수년간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십년 전에 전형적 여름용 블록버스터를 상상하고 극장에서 관람한 나는 오히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뭐 이런 영화가 다 있구나.’라는 게 당시의 내 생각이었다. 그 흥미로운 액션보다는 이 세상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이 초등학생이던 내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의문을 갖게 되었다 ‘숟가락은 존재하는가’
아버지를 졸라 극장에서만 3번 비디오로도 두 번을 본 [매트릭스], 그것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살면서 누구나 하게 되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영상으로 경험한 첫 계기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매트릭스에 관한 철학 책들을 읽고 나이가 하나 둘 늘어감에 따라 [매트릭스]는 마치 어린왕자가 그렇듯이 해마다 내게 다른 의미를 선사해 주었다. 그것은 놀랍도록 탁월한 논리를 전개시켜 암울한 미래상을 납득시키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며, 또한 과거로부터 존재하던 질문 ‘우리는 실재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줌과 동시에, 제한이 없는 인간 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이야기가 어린아이가 빠져있는 중세 판타지 같은 관념론이 될 법도 하다. 그러나 워쇼스키 형제는 철저한 논리로 그것을 심신일원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이제 갓 새로운 세상을 본 네오의 질문, “매트릭스에서는 총을 맞아도 안 죽나요”, “...정신이 죽으면 몸도 죽어.” 모피어스의 그 대답.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매트릭스라는 가상세계 따로 사육되는 이유. ‘정신 없이는 육체가 생존할 수 없으니까’. 복잡한 인간의 육체와 정신성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