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의 이해
-焚書坑儒(분서갱유)
1.정의
焚書坑儒(불사를분, 글서, 묻을갱, 선비유): 진나라 시황제가 정부를 비방하는 언론을 봉쇄하기 위하여 서적을 불사르고 선비를 생매장한 일을 이름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묻는다는 뜻으로 문화에 대한 진시황황의 가혹한 정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2.용례
분서갱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하여 박해하면 그것이 곧 분서갱유이다.
3.焚書坑儒(분서갱유)사건의 전말
-상앙(商鞅) ·한비자(韓非子) 등의 법가(法家)는 우민 정책과 법에 의한 획일적인 사회 통제를 주장하기 때문에 법치 노선을 비판할 수 있는 일체의 학문과 사상을 배격하였으며, 특히 선왕 도를 내세워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유가(儒家)를 배척하였다.
진(秦)나라는 상앙 변법 이래 법치 노선을 견지하였고 천하 통일 이후에도 이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시황제(始皇帝) 34년(BC 213년) 전국의 유생들이 진나라에서 실시하는 중앙집권적 군현제를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함으로써 불행한 사태가 시작되었다.
시황제는 일단 그 의견을 조정의 공론에 붙였으나, 철저한 법가로 일관한 승상 이사(李斯)는 그에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제에 사적인 학문으로 정치를 비판하는 일체의 행동을 본원적으로 봉쇄하기 위하여 진나라 이외의 모든 책은 불태우고, 《시》 《서》 백가어를 소장한 자는 30일 이내에 모두 관에 신고하여 불태우게 했다. 이를 어긴 자는 관노 성단(城旦)으로 삼으며, 감히 《시》 《서》를 논한 자는 기시(棄市)에 처하고, 옛것을 들먹이며 현실 정치를 비방한 자는 족형(族刑)에 처할 것, 단 의약 ·점복 ·농업 관계 서적은 제외할 것을 건의하자, 시황제는 이를 재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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