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제2 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실업 부조국은 전쟁피해자 수당지급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그 명칭을 바꾸어 국민부조국으로 변경하였다. 1940년 노령연금법은 개인의 욕구에 기초한 의료 서비스에 대해 부가적인 연금을 마련하였다. 이 전쟁으로 인해서 보건서비스 분야 중 결핵, 암, 그리고 성병치료에 보다 많은 노력이 요구되었다.
중요한 변화들이 병원 조정 분야에서 일어났다. 1939년 전쟁이 터지자 민간병원과 공공병원들간의 조정을 위한 긴급 병원체제의 확장과 젊은 의사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이 확대되었다.
전 쟁 중에 시민들을 위한 많은 기구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런던시는 1,000개 이상의 민원상담창구를 설치하여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또한 이 기구는 전쟁이 일어나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자문을 해주었으며 법적인 견해를 알려주고 각종 서류를 발급해 주었다. 이 기구는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나 제도적인 구체적 대안이 시민들에게는 필요로 하였다. 이에 대해서 국가는 대책마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 본론
1.베버리지 위원회의 설치 배경
전쟁의 가장 암울한 시기였던 1942년 말에 발표된 베버리지 보고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manna)과 같았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 사회개혁의 산파였던 노동장관 그리피스(James Griffiths)의 말.
주 지하듯이 베버리지 보고서는 영국 복지국가의 청사진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세계적인 전쟁 영웅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을 애틀리(Clement Attle)가 이끈 노동당이 이기고 집권하였다. 애틀리와 노동당은 베버리지 보고서에 입각하여 기성복을 만들 듯 복지국가를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원석조, 2001:12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