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고전학파가 전성기를 누린 시기인 1848년에 K. Marx와 F. Engels가 공동 집필한 공산당 선언 이 발표됨으로써 경제학은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고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조류에 역사학파는 발생되었다. 역사학파는 구역사학파와 신역사학파로 나뉘어서 구분할 수 있다. 구역 사학파는 로셔에서 시작되어 힐데브란트를 거쳐 크니스에 와서 일단락 지어진다.
구역사학파는 1843년 관세 동맹이 성립된 이후부터 1871년 보불전쟁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학파로서 이들은 연역법보다도 귀납법을 중시했으며, 경제학을 귀납적으로 각 국민경제의 구체적 특수성을 밝히는 사회과학으로 보았다. 따라서 모든 시대, 모든 국민에 타당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경제 이론은 없다고 주장하였고, 특히 크니스는 역사적 발전까지도 의심하였다.
그러나 구역사학파는 역사성을 강조한 결과 경제 이론 자체에는 별로 공헌을 하지 못하였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할 만한 이론적 힘이 미약했다. 이들 구역사학파는 W. Roscher를 위시하여 B. Hildebrand와 K. Knies의 3인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리스트 의 역사적 관점을 토대로 국민경제에 대한 역사적 연구방법을 정립하였다.
즉 1843년 관세동맹 이후, 1871년 보몰전쟁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자본주의에 있어서 산업혁명기 라고 할 수 있는 당시의 경제이론을 지배한 것이 구역사학파이며, 독일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에 비하여 어떻게 다른 역사적 조건에 놓여 있는가를 해명하고, 영 국을 지배하고 있는 고전이론이 그대로 독일에 적용 될 수 없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따라서 모든 시대, 모든 국민에 타당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경제이론은 없다고 생각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