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산업화 시대의 산재제도 변화 과정
1. 급속한 산업화와 노동문제
정부가 수립되고, 각 계 각 층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산업의 안정화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의 이면에는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다. 먼저, 급속한 산업화와 중화학 공업 추진으로 산업재해가 급증하게 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1962년부터 실시된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맞추어 농업이 경제발전의 기반이 되었던 사회는 산업중심의 사회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경제는 어느 정도 안정궤도를 향해가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사회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혼란의 시작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이었다. 즉,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의 평화시장 앞에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평화시장 피복공장의 재단사이자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22살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을 거행하는 자리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고 외치며 평화시장 앞을 달리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는 외마디 말을 남기고 쓰러진 뒤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민주화의 초석을 다진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노동자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한 일이지만,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1970년의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만 2,500여 개에 달하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는데, 이 모두가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한국 노동운동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로 노동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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