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쿠테타로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초부터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구실로 정치권력 장악을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착수했는데, 이는 전두환을 주축으로한 군사정권의 출범을 위해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공공연히 선언한 반민주주의 군사 쿠테타였다.
정권탈취를 위해서는 어떠한 뜨거운 대가도 지불할 수 있는 무리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5월 18일에서 5월 27일까지의 광주항쟁이 증명하고 있다. 5. 17조치는 국허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 언론검열을 강화하는 등,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정권탈취적 음모였다.
전두환은 5. 17조치로 대통령은 따로 있으나 실질적인 실권자가 되었다.
2. 광주민주화항쟁 왜곡보도
5.18당시 정국은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김대중 김종필씨등 정치인 26명 연행, 김재규씨 사형확정, 신현화 내각총사퇴등 한치 앞을 재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광주 소식만은 계속 보이지 않았다. 신문에 광주 소식이 다시 등장한 것은 21일 석간부터다. 물론 광주항쟁이 아니고 ‘광주소요’라는 이름으로 계엄사령부의 광주관련 첫 공식발표가 보도된 것이다.
당시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각 신문사의 보도 양태는 다음과 같다.
1) 서울신문
항쟁이 정점에 달한 80년 5월 21일 광주사태와 관련한 담화문이 발표 다음날 사설 ‘안보적 중대 사태이다’를 통해 “유혈사태를 일으켜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면서까지 자기주장만을 옳다고 행동화할 만큼 대국을 못보는 격앙된 사태를 정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원통한 것은 이 양상이야말로 북의 무리가 노리고 있는 각본에 딱 들어맞는 연출 무대로 되고 있다는 점” 이라고 예의매카시적 보도를 들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