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에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각종 종교가 유입되었다. 더욱이 일제가 우리의 종교계를 친일세력화하기 위한 공작을 끊임없이 벌이는 상황에 맞서 계몽운동가들은 민족의 응집력을 강화하기 위한 민족종교운동을 벌였다. 당시 일제는 동학, 불교, 유림계를 친일화시키려는 여러가지 작업을 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1909년에 창립된 대종교(大倧敎)는 민족시조인 단군에 대한 신앙을 체계화한 것이었다. 대종교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환웅․환검 들을 받드는 삼위일체의 신앙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나철(羅喆)․오기호(吳基鎬)․이기(李沂)․정훈모(鄭薰謨)․김인식(金寅植) 등에 의해 개창되었다. 나철은 일본을 여행하며 민간차원에서 외교활동을 벌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던 중 외교적인 방법의 한계를 깨닫고 박대하(朴大夏) 등과 함께 5적암살단을 결성하여 일제에 대한 무력투쟁을 계획하기도 하였다[미주 11]. 단군교는 당시 국사․국어연구분야에서 일고 있던 민족주의를 알차게 하는 것으로 환영을 받아 국어연구의 중심인물이었던 주시경(周時經) 등도 기독교를 버리고 단군교로 개종하였다.
전통적인 유교를 새롭게 하여 국교로 보급함으로써 국권회복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박은식은 유교의 폐단을 비판하면서 양명학을 통해서 유교를 개혁하고자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을 제창하였다. 나아가 양명학의 지행합일(知行合一)과 사회진화론의 진보원리를 조화시켜 시대의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박은식은 유교구신론을 발전시켜서 전국민의 단결을 목적으로 한 대동사상(大同思想)을 창시하였다. 이는 공덕공리주의, 대승법(大乘法)에 의한 구세주의(救世主義)와 보편적이고도 수평적인 인(仁)의 도덕성에 기초를 둔 사상이었다. 또 민족주의사상의 하나로서 존아국주의(尊我國主義), 애국의 지행합일 및 세계평화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실천성이 강한 사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