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김정일의 선군정치가 1995년 정초를 기점으로 창시됐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 대국상(大國喪)을 치른 다음해인 1995년 1월 1일 설날 아침 김정일이 비장한 각오로 조선인민군 214군부대 다박솔 초소를 찾은 것은 군대를 믿고 군대에 의거하여 험로를 헤치며 미래를 열어 나가려는 그의 정치적 결심과 의도가 담긴 역사적 행보로서, 이날이야말로 사회주의 역사 최초로 선군정치의 포성이 울린 날이라고 설명한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 ‘5천년 민족사에 가장 비통한 날’이었던 새해 첫날에 김정일이 군부대를 찾았다면서 다박솔 초소 방문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 사후 나라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던 시점에서 새해 첫날 군부대를 찾음으로써 ‘군 중시의 길’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사후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북한 매체들은 당시로서는 다박솔 초소 방문을 선군정치의 시작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1995년 설날 김정일이 맨 먼저 찾은 곳은 다박솔 초소가 아니라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이었다. 다박솔 초소 방문이 ‘선군정치의 시작’이라는 보도는 그로부터 4년 후인 1999년에 처음 나왔다. 실제 북한사회에는 1995년 시점에서 선군정치라는 용어가 생겨나지 않았고, 따라서 주민들도 선군정치를 모르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군사를 중시할 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듭되는 말씀들, 혁명적 군인정신을 온 사회에 일반화할 데 대한 가르치심이 선군정치라는 위대하고 독창적인 정치방식으로 어버이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고 주체의 혁명위업을 완성해 나가시려는 크나큰 뜻이 체현되여 있다는 것을 다 깨닫지 못하였습니다』(통일여명 편집국, “선군령장의 고난의 행군 - 김일성방송대학강좌 특강”, 2003, p.26.)
하지만 선군정치가 시작된 시점은 1995년 1월이 아니라 1994년 10월이라는 주장이 북한 문헌에서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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