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대와 1840년대에는 “프롤레타리아”-빈민들은 점점 더 그렇게 불려졌다-를 설명하고 이론화한 문헌들이 많이 나타났다. 프러시아의 보수적 관리 스타인(Lorenz von Stein)은 널리 읽혀지고 토론된 근대 프랑스의 社會主義와 공산주의(Socialism and Communism in Modern France: 1842)에서 증대해가던 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意識을 공산주의 사상과 연결지웠다. 스타인은 그들이야 말로 새로운 형태의 빈민이라 불렀는데, 그들은 종래 그들에게 주어지던 간헐적이고 빈약한 자선을 이제 더 이상 적절한 것으로 수용하지 않고, 일종의 ‘물질 공동체’(Gütergemeinschsft)를 창조함으로써 자신들의 형편을 일반화시키려 하였다. 더우기 그들은-과거의 빈민들과는 전혀 다르게-긍지가 있고 투쟁적이며, 부유층에 대한 분노로 차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숫자와 가끔 실천해 본 용기, 일체감 의식, 혁명을 통해서만 그들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는 감정이라는 관점에서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Tucker, Philosophy, p. 115). 스타인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란 사유재산제도를 기반으로 존속하고 있다는 유럽문명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