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자신의 인생을 피력한 말 중에 가장 난해한 말이다. 물론 공자가 회고한 생의 줄기를 학문에 둔다면 이 말은, 학문과 인격을 갈고 닦아 이제는 순리에 통달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공자가 처한 현실을 놓고 보자면 과연 이런 해석이 맞을지 의문이다. 공자 육십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여전히 자신을 받아줄 곳을 찾아 지친 노구를 이끌고 제자들과 함께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고 있었다.
기원전 491년, 61세가 되는 공자는 진나라를 떠나 채蔡나라로 향했다. 하지만 채나라 소공이 대부에 의해 비명횡사했다는 급보를 접하고 소국인 섭葉나라로 발길을 돌렸다. 섭공葉公은 공자 일행을 맞아 주었다.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관해 물었으나 자로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공자께서 자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말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됨이 분발하면 식사도 잊고, 즐거워 근심도 잊으며, 늙어 가는 것조차 모른다고 말이다. 〈술이〉
섭공의 갑작스런 질문에 주변이 없는 자로가 미쳐 스승에 대한 소개를 제대로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못내 아쉬웠던지 공자가 섭섭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자못 나이가 우려되면서도 여전히 정치에 종사하고 싶어하는 그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나를 써 주는 자가 있다면 일년이라도 좋다. 삼 년이면 성과가 있을 것이다. 〈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