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 아티스트
키스 해링
Keith Haring, 1958.5.4 ~ 1990.2.16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는 뉴욕에 걸맞지 않게 더럽고 지저분함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뉴욕의 지하철역. 시기가 지난 광고를 가리고자 덮어놓은 검은 종이판 위에 하얀 분필로 그려진 단순한 이미지의 드로잉들.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선과 율동감 있는 상징적 형상들을 통해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을 대중 가까이로 끌어들인 젊은 이단아, 그는 바로 뉴욕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이다.
‘예술은 과연 무엇일까 예술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예술은 어떤 힘을 발휘해야 하는가’ 스무 살도 안 된 젊은 청년은 계속되는 질문과 고뇌 속에 끝없는 작업을 해댄다. 지하철역, 거리의 담, 건물의 벽, 버려진 문짝….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작업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것은 곧 그에게 있어 삶의 목적이자 원동력이었다.
▲ 키스해링의 지하철 드로잉 사진. (Photo by Elinor Vernhes)
1958년, 필라델피아 쿠츠타운에서 출생한 키스 해링은 미국의 전형적인 가정의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통과 기독교가 강하게 자리잡은 보수적인 필라델피아,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과 눈에 띄는 건물이나 흥미거리라곤 찾아보기 힘든 작은 시골, 쿠츠타운은 호기심 많고 억누를 수 없는 열정으로 가득 찬 소년이 머물기에는 더없이 답답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해링의 십대는 결코 모범적이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불어 닥친 베이비 붐 마지막 시기에 태어난 그는, TV의 보편화로 대중문화가 형성되고 매체의 영향력이 커져가던 미국의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