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짧았지만 혁명적이었던 큐비즘 운동은 그 후의 모든 미학적 운동들의 모체로서 널리 인식되게 된 이래로, 큐비즘의 공간개념은 이후 발생된 건축의 세대들을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큐비즘은 하나의 관념적 예술(conceptual art)이었다. 그것은 관념들을 시각화시키고자 하였다. 회화적 언어는 현실적이며 추상적이라는 양면성을 띄고 있었다. 큐비즘은 네덜란드의 데 스틸이나 러시아의 구성주의와 같은 완전히 추상적 운동으로 향하는 도약대가 되어 버렸으며, 한편으로는 프랑스의 퓨리즘(Furism)과 같은 현실적인 경향을 포기하는데는 분명히 반대하였던 운동을 지향하기도 했다.
큐비즘은 시인 Apollinaire가 피카소에게 브라크를 소개하였던 1907년에 태어났다. 큐비즘 회하의 최초의 대외적 선언은 브라크가 1908년 11월 파리의 앙리 칸와일러(Henry Kahnweiler)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였을 때 일어났다. 물론 이러한 단순한 사건들은 그 당시의 문화적 현상이 재빨리 확산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곧 바로 확산될 수 있었다. 그 당시 아인슈타인은 그의 특수 상대성이론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론, 1905]을 발표하였고 그의 혁명적인 일반 상대성이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리학의 이러한 발전에 병행하여, 철학에서도 공간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베르그송(Bergson)은 [창조적 진화,1907]에서 인간의 환경적 경험에 있어서의 관념적 이미지란 명제를 유발시키는 지속적 현상을 연구하고 있었다. 앞서 프라이의 큐비즘에 대한 분석에서 인용하였듯이, 베르그송은 이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관찰자는 자신의 기억속에, 외적인 시각세계 속에 주어진 어떤 대상물에 대한 지각적 정보들을 풍부하게 축적하며, 이렇게 축적된 경험은 그 대상물에 대한 관찰자의 관념적인 지식을 형성하는데 기본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