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에 대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다양하다. 이승만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의 다양성은 그에 대한 호칭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이 박사’ ‘이 대통령’ ‘혁명가’ ‘국부(國父)’ ‘건국의 아버지’ ‘독립운동가’ ‘가부장적 권위주의’ ‘카리스마적 지도자’ ‘독재의 화신’ ‘늙은 독재자’ ‘외교의 귀신’ ‘인사의 등신’ ‘정략가’ ‘고집쟁이’ 등 이승만에 대한 호칭이나 닉네임이 다양하다. 한 사람에 대한 호칭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에 대한 이미지가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의 인성적 측면도 단일화된 분석으로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승만이 다양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대적․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의 성장배경은 한말의 정치적 위기가 고조되었던 시기이다. 거기에다 일본식민지라는 불안정한 정치적 배경이 오버랩 되었던 시기였다. 이와 함께 유교적인 사회적 배경이 여전히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당시로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미국에서 선진학문을 공부한 배경도 있었다. 이렿게 복잡한 그의 성장배경과 당시의 어지러운 사회적 배경이 그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를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승만의 이러한 리더십의 배경을 바탕으로 이승만 개인의 선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이승만의 리더십이 갖는 선전에 대한 특성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이승만 시대에 행해졌던 선전에 관한 수단이나 방법보다는 이승만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선전의 특성을 분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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