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나라-명나라대의 회화예술
원대의 회화를 대충 살펴보면 송시대 양식의 계승과 그 반동으로 볼 수 있는 문인화의 발흥이라 할 수 있겠다. 원나라는 광대한 판도를 영유하여 동 ·서의 교통은 활발하게 되었으나, 위정자들이 회화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어서인지 화가의 대부분이 송나라를 계승한 한민족의 피를 이었으나, 송나라 때와 같은 화원 제도는 설치하지 않았다.
송나라 때의 화풍을 계승한 화가에는 안휘 · 왕진붕 · 손군택 · 장원 ·하명원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안휘는 인물화가로서, 당대 제일로 꼽았으며, 생생하고 괴기에 찬 도석인물화를 잘 그렸고, 채색법에도 새로운 기교를 구사하였다. 손군택을 비롯한 산수화가는 남송의 대가인 마원 · 하규의 화풍을 본받은 데 불과하여 새로운 맛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송화의 영역에서 탈피하여 독자적인 화풍의 경지를 연 화가로 조자앙이 있다. 그의 그림 그리기는 여기인데, 그럼에도 전문화가에는 없는 자유스러운 경지로 화필을 전개하여 뒤에 가서 문인화가 일어나는 바탕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문인화가 회화의 양식으로 확립되어 그 화류는 중국화 가운데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데, 그 모체가 된 것이 원나라의 4대가이다. 그들은 오진 · 황공망 · 예찬 · 왕몽의 4명으로, 이들은 거의 같은 시대에 화단에 등단하였고, 출신지는 장쑤 ·저장의 두 성이다. 이들이 작품제작에 몰두한 곳은 모두 둥팅호 근처여서 자연 관조를 통해 그림을 그렸으므로, 초속고매한 정신이 작품 속에 표현되었다. 문인화, 또는 남화의 본령은 이 4대가에 의해 형성되어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밖에 화조화를 잘 그린 전선이 있다. 그는 사생을 중시한 송나라의 원체풍과 같이 장식적인 화면의 구성이나 채색을 연구하여 일가를 이루었고, 그의 화풍은 명나라의 화조화에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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