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도
미래가 있다. 처음 시작 말이다. 부의 미래를 읽기로 생각하고 부의 미래란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부의 미래란 무엇인가?’에 대해 씌어진 욕망의 소산이라는 Chapter를 읽게 되었다.
“부” 란?
갈망을 만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멕시코 작가 가브리엘 자아드는 “부는 결국 모든 가능성의 축적물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부와 돈은 동의어가 아니다. 따라서 돈은 여러 가지 부의 증거 또는 상징적인 표현중 하나에 불과하다.
부는 그 형태가 공유든 아니든 인종의 소유다. 즉, 부는 우리에게 어떤 형태의 웰빙(Well-being)을 제공하거나 다른 형태의 부로 교환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부는 욕망의 소산이다.
멕시코 작가 가브리엘 자아드는 “부는 결국 모든 가능성의 축적물일 뿐이다.”라고 말한 것이 나에게는 가장 마음을 찌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혼자 독학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학교 다닐 돈이 준비되어 있다면 좀 더 빠른 속도로 공부를 진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으로도 부는 가능성을 더 만이 제공하는 도구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앨빈토플러가 말한 것처럼 부는 욕망의 소산이다. 우리가 부를 요구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낳은 삶과 더 낳은 현재,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에 부를 바라는 것 같다. 또한 부는 다른 형태로 교환도 가능하다. 돈이 있으면 옷을 사는 것처럼.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부의 미래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생각해 보았다. 이 부분을 보면서 새로 배운 점은 부가 단순히 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도구”라는 것을 배우게 된 것 같다.
부의 의미를 생각하면 단순히 부자 또는 돈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부”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권력, 지위, 돈을 생각했다. 하지만 부의 미래 중 욕망의 소산 부분을 읽으면서 부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