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여자 동창과 수다 떨던 중에 유난히 허물없이 지낼 수 있으면서도, 단 둘이 있으면 묘하게 연애하는 느낌을 주는 남자아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각자 이야기하고 보니 그 대상이 같은 사람이었다. '역시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하는 약간의 실망감을 안긴 채 그 이야기는 어느덧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남자 동창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여자들끼리 수군대던 그 묘한 남자아이가 남자 동창들 사이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걔는 여자랑 있을 때만 인간인 척 해." 왜 그 한마디에 이유도 없이 '아!'하는 깨달음이 찾아왔을까.
그렇게 직관적으로 깨달음이 왔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어릴 적에는 다들 똑같이 순진한 얼굴로 시작했던 여자애들이 화장을 하고 스커트를 입으면서, 좋아하는 남자를 하나씩 찜해서(어쩜 그렇게 공평히 나눴는지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연애 작전에 돌입할 때, 나는 남자에 대한 아무런 도전의식도 느끼지 않았고, 남자나 여자나 같은 인간이라며 인류평등적으로 생각했으며, 나의 친구들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치장하고 돈을 쓰는 것이 헛된 소비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