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주의와 진단주의의 차이점을 비교하여 자세히 기술하시오.
1920년대 미국의 번영이 1929년 주식시장이 무너지면서 대공황에 처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제공황은 10년 동안 계속되었다. 1932년 1,2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하였고, 5,000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고, 32,000개의 사업이 실패하여 빈곤과 고통은 절정에 이르렀다. 경제공황 기간 동안 Hoover 대통령은 공적 구제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1933년 Roosevelt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철학에 입각한 광범위한 공공 영역 (Public sector)에서 공정복지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긴급구제법을 입법화하였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정책은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다시 변화시켰다. 대공황으로 인해 지극히 정상적이던 성실한 사람들이 직업을 상실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등의 문제를 보이게 되자 개인 문제의 근원을 사회에 두는 것에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따라서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정부기관뿐 아니라 공공시설에 고용되어 공공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커다란 사회적인 변화를 인해 개별사회사업의 접근에서도 또 다른 움직임을 보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진단주의 학파(diagnostic school)와 기능주의 학파(functional school) 간의 분리이다.
진단주의 학파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근거하여 무의식, 전이, 저항, 정신적인 결정론을 포함하는 프로이트 학파의 개념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1920년대 개별사회사업은 클라이언트의 초기 아동기에 발견되지 않은 문제와 클라이언트의 생육사를 탐구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Gordon Hamilton, Florence Hollis, Lucille Austin, Fern Lowerg, Annette Garrett 등의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회복지사들은 부모의 양육으로 초기에 내면화된 성격결정론과 인간을 무의식적이며 기계론적으로 보는 프로이트 학파의 접근에 불만을 갖게 되었다.
진단주의학파가 프로이트의 이론에 근거하여 과거 중심적인 접근을 계속 함에 따라 현재의 사회환경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학자들은 기능주의를 주장하고 나섰다.
기능주의는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중시하고, '지금 - 이곳', 즉 현재에 초점을 두면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환경과의 관계를 중심적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 학파 사람들은 대공황에 의한 다양한 문제를 프로이트가 설명하는 과거의 성장과정상의 문제나 무의식의 문제로 규정짓기에는 너무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면서 현시점에서 더 나은 기능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기능주의 학파는 1930년대 펜실베이나 대학의 사회사업과 교수들을 회원으로 하는
Virginia Robinson, Jessie Taft에 의해서 지도되었고,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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