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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이해]
주제: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 유적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여 제출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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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Ⅱ. 유적소개
1. 유적의 위치와 역사
2. 발굴과정
1) 발굴 구획과 발굴 성과
2) 자연과학적 분석
3) 층위구분
4) 발굴 이후
5) 의의와 평가
(1) 의의
(2) 평가
Ⅲ. 개인적 견해
Ⅳ.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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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공주 석장리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정규교육을 받았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유적이다. 필자의 경우, 한 때 국사를 좋아하기도 했었고 집에서 교육의 일원으로 온 가족이 역사관련 여행을 떠난 적이 많았기 때문에 익숙한 유적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바쁜 삶에 치여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잊고 있었는데, 과제가 주어진 김에 제대로 학습해보고자 한다. 본론에서는 유적소개를 한창균·이융조의 논문을 참고해서 유적에 대한 소개를 진행해보도록 하겠다. 유적이 발굴된 이후의 상황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적이 발굴된 후 유적의 현황과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은 현재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공주 석장리 유적의 의의와 평가를 해보고 개인적인 견해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Ⅱ. 유적소개
1. 유적의 위치와 역사
공주 석장리 유적은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 334호이다. 한창균의 논문에 따르면 석장리 유적은 〃1963년 미국의 앨버트 모어(Albert Mohr)와 샘플(L.L Sample) 부부가 홍수로 무너져 내린 강가에서 뗀석기를 채집하면서 이 일대에 구석기 유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1964년 5월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손보기는 앨버트 모어와 함께 석기가 채집된 현장을 답사하였고, 구석기 유적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문화재관리국에 발굴을 신청하여 동년 11월 첫 발굴이 이루어졌다. 1964년 발굴이 시작된 이후 1973년을 제외하고 1974년까지 10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이후 한동안 중지되었다가 1990년과 1992년에 대전-공주 간 도로 개설에 따른 발굴 작업이 수행되었고, 2010년에는 문화재 보호구역 확대를 위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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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균, 2015,『석장리 구석기유적 발굴의 학사적 의의』.
이융조, 2014,『구석기와 함께 한 50년-석장리에서 만수리까지의 궤적』.
석장리 박물관(http://www.gongju.go.kr/sjnmuseum/index.do).
한국민족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4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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