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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기술이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건강과 질병[전쟁이 몰고온 암, 흑사병[페스트], 스페인독감, 사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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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건강과 질병
목 차
1. 전쟁을 몰고온 암
2. 흑사병(페스트)
3. 스페인독감
4. 사스
기술이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건강과 질병
전쟁을 몰고온 암
1887년, 지성적인 호인(好人)인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태자는 왼쪽 성대(聲帶)에 종양이 생겼다.
초기의 치료가 실패하자 독일 의사들은 이것을 암 이라고 진단하고 후두(喉頭)절제 수술을 권했다.
그러나 영국의 인후(咽喉)전문가 모렐 맥킨지는 암의 징후가 없다고 단언했으며 그래서 수술은 하지 않았다.
1888년 6월15일, 왕위에 오른지 불과 99일 만에 프리드리히는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그리하여 지성이 훨씬 뒤떨어지고 전쟁을 좋아하는 그의 아들 카이저 빌헬름의 숙명적인 통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만약 독일인 의사들이 그들의 생각대로 했더라면 프리드리히의 생명을 구했을 것이고,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겪지 않아도 됐을 것으로 생각하는 의학자들이 많다.
흑사병(페스트)
흑사병에 관한 역사적 기록
현대에도 에이즈라는 죽음의 전염병이 있지만, 그것은 세계 전체를 뒤바꿀 만큼 무시무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었던 근대 이전 사회에서 커다란 전염병의 발생은 사회적경제적 변화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심성까지도 바꾸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커다란 전염병이란 바로 중세 시대에 유럽에 유행했었던 흑사병(Black Death)이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발생했던 모든 재앙들 가운데에서도 흑사병은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 흑사병이 있기 전의 전염병들은 맹렬했지만 대체로 발병 기간이 짧았고 좁은 지역에 한정되었었다. 이와 달리, 예외 없이 불과 1348년에서 1350년 사이에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대략 2,500만 명에서 3,500만 명에 달했다. 이것은 그 당시 전체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할 만큼 많은 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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