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향파 (최서해)
1. 최서해(崔曙海)의 생애
본명은 학송(鶴松)이며,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하였다. ‘서해(曙海)’는 아호로서 학송이 자신의 이름을 숨긴채 ‘서해’라는 가명으로 쓴 시를 북선일일신문(北鮮日日新聞)에 기고했는데,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한 음악대회가 열렸다. 이에 크게 감동하여 ‘서해’를 아호로 정해버린 것이다. 학력은 성진의 보통학교 졸업설과 중퇴설이 있어 분명치 않다. 어쨌든 그의 학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부친은 한방 의사였으나 독립군이 되기 위하여1)1) 한국문학통사 5, (조동일, 지식산업사, 2005) 202쪽,
일찍 가출하여 만주 등지를 유랑하였다. 독립군이 된 아버지를 찾아 만주로 가서 각지로 전전하며 품팔이·나무장수·두부장수 등 밑바닥 생활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는데, 이러한 체험이 그의 문학의 바탕을 이루게 하였다. 1924년 [동아일보]에 [토혈(吐血)]을, [조선문단]에 [고국]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고 ,계속 [탈출기(脫出記)] [기아(飢餓)와 살륙(殺戮)]을 발표하면서 신경향파문학(新傾向派文學)의 기수로서 각광을 받았다. 특히 [탈출기]는 살 길을 찾아 간도로 이주한 가난한 부부와 노모 세 식구의 눈물겨운 참상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신경향파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당시의 빈곤의 참상과 체험을 토대로 묘사한 것이어서 그 간결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힘입어 한층 더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후기에 어느정도 삶에 정착하면서, 빈궁문학, 경향파문학에서 탈피해 인도주의적 작품을 썻으나, 예술적인 형상화가 미흡했던 탓으로 초기의 인기를 지속하지 못하고 불우한 말년을 살다가 일찍 죽었다. [십삼원(拾參圓)] [금붕어] [박돌(朴乭)의 죽음] [살려는 사람들] [큰물 진 뒤] [폭군] [홍염(紅焰)] [혈흔(血痕] 등이 있다.2)2) 동아대백과사전, (동아출판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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