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의 생애와 삶
유럽에서 크림전쟁이 끝나던 해인 1856년 5월 6일, 지금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가 된 오스트리아의 프라이베르크 모라비아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마침 그 아이를 본 한 노파가 아이의 어머니에게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아이는 유태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유태인이었다(부모는 20살 차이가 나는 재혼부부였음). 그는 어머니와 가족들의 지나친 기대와 사랑을 받고 성장했기 때문에 다소 독선적이고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자기 분야에 몰두할 줄 알았다. 이윽고 그는 당시 유태인이라는 차별과 박해를 극복하고, 20세기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정신분석을 창시했는데, 그가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이다.
네 살 되던 해, 그의 가족은 경제적인 이유로 비엔나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8년 영국으로 망명하기까지 거의 한 평생을 살았다.
프로이드는 일곱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야곱 프로이드는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중년에 아내를 잃어 40세에 20세의 젊은 아말리아 나탄존과 결혼했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전처 소생의 두 아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거의 함께 살지 않았다.
프로이드의 가족은 경제적인 이유로 좁은 아파트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우수한 학생이었던 프로이드만은 늘 독방을 사용했고, 다른 식구들이 촛불을 사용할 때도 프로이드는 늘 기름 등잔을 켜 놓고 공부했다. 프로이드가 어려서부터 총명해서이기도 했지만, 그의 젊은 어머니가 그가 태어난 직후 어느 노파가 프로이드를 보고 한 예언을 믿고 그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그 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처럼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했으며, 다른 나라의 고전들을 많이 읽었다. 특히 독일어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으며, 한때는 문학적인 재능으로 상을 받기도 했고,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이태리어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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