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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과 성서 - 안익태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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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의 생애와 사상
[ 목 차 ]
1. 안익태 (Ahn, Eak-Tai 1906년 12월 5일 ~ 1965년 9월 16일)
1) 안익태의 생애.
2) 안익태 삶과 사상
i) 한국환상곡
ii) 애국가..
iii) 애국가 ‘정체성’ 논란
iv) 한국 음악에 끼친 영향.
v) 안익태 ‘친일음악가’ 논란
2. 안익태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개인적 견해.
1. 안익태 (Ahn, Eak-Tai 1906년 12월 5일 ~ 1965년 9월 16일)
1) 안익태의 생애
안익태는 1906년 12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교회에서 처음으로 음악을 접하였고 바이올린과 트럼펫의 연주를 배우며 음악가가 되려는 꿈을 키웠다. 평양보통학교 시절에는 정규 음악수업을 받지 못했지만 여러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할 줄 아는 신동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1918년 평양보통학교 졸업한 뒤에 숭실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안익태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마우리(E.M.Mowry) 박사1)1) 1909년 선교사로 내한하여 숭실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서양음악을 알리는 선구자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안익태기념관)
였다. 안익태는 숭실중학교 시절에 마우리 박사의 도움으로 첼로공부를 시작했지만 평양에는 지도할 선생이 없어서 서울의 죠지 그레그(G. Gregg) 선교사를 찾아가 배웠다. 그러나 그가 원하던 음악공부를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숭실중학교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숭실학교는 평양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는데 안익태는 ‘3.1운동 관련 수감자 구출운동’에 가담했다가 일경의 지목 대상이 되어 퇴교처분을 받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우리 박사는 안익태의 일본 유학을 주선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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