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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감상문] 라오지앙후 최막심 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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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막심의 자유론
-[라오지앙후 최막심 감상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동기들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주인공인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고, 사람을 죽여 놓고도 모든 게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당당하다. 사형을 앞두고 죄를 뉘우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과거에나 현재에나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몇몇 동기들은 뫼르소를 자유인의 모범적인 모습이라 치켜세우며 [이방인]을 통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느끼는 자유에 공감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느끼냐고 이유를 물어왔지만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저 현실에 발을 붙이지 않은 채 허공에 떠 다니는듯한 주인공의 존재가 낯설게 느껴지고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는 보통 사람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이상적인 공간에 혼자 동떨어져 숨 쉬고 있는 존재 같았다. 위 작품의 주인공 최막심 또한 자유인을 자처하는 사람이지만 뫼르소와는 다른 듯하다. 연극을 보는 내내 자유에 대한 그의 관점을 곱씹으며 내가 왜 뫼르소의 자유에 공감하지 못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결코 혼자 존재할 수는 없다. 뫼르소가 이 틀마저도 사회적 속박이라며 벗어버렸다면, 최막심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정했기 때문에 자유를 추구하게 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이들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막심의 자유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뫼르소와 달리 연민을 느끼고,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보통 사람인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지만 오르땅스가 행복할 수 있도록 약혼을 해 주는 장면에서도 최막심의 자유가 인간의 행복을 향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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