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에 관하여
우리는 일반적으로 연희(演戱)를 그저 하나의 여흥 수단으로 넘겨 버리는 옳지 못한 습성을 갖고 있다. 예술을 생활을 떠난 관념의 소산으로 아는 인습이 조선왕조의 폐쇄적 도악사상 (道樂思想)등으로 하여금 더욱 고질화 시키는 역활을 해온것 같다. 도악적 심미욕 (道樂的審美欲)의 노예가 되어 민중의 생활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그 함수 관계를 차단하며 다분히 통치권력의 지배수단으로 발아(發牙)한 향락적 예술형태와는 달리, 오히려 이들과 대립 관계에 서면서 이땅의 원초적 민주평등사상 (民主平等思想)을 바탕으로 한 민중예술 (民衆藝術)로 부각되어 나타난 것을 남사당놀이로 보는 것이다.
남사당패란 우리의 오랜 역사에서 민중속에서 스스로 형성, 연희되었던 유랑예인집단 (流浪藝人集團)을 일컫는 것으로 그 배경은 말할것도 없이 민중적 지향을 예술로써 승화하여 온 진보적 구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반인적 자연(反人的自然)과 인성(人性)에 대한 대립적 존재로서 민중의 생활사 (生活史)와 같은 맥락을 갖는 것이다. 그들의 형성배경에 대함 사소한 부정적 異見들은 가시덤불의 민중사를 통찰해 보면, 뜨거운 애정으로 감싸질 화사첨족 (畵蛇添足)에 불과한 것이라 하겠다.y
1.발생(發生), 구분(構分)
남사당패란 1900년초 이전에 있어서 서민층의 생활군단 (生活群團)에서 자연발생적 또는 자연발전적으로 생성한 민중놀이 집단을 일컫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집단은 권력 주변에 기행하였던 지배계층이 주관했던 관노, 관원놀이와는 달리 그 유지와 구성이 어려웠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 어느 때부터 민중놀이집단 남사당패가 생겨났는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알고자 그 방법을 문헌적 고구(考究)에만 의존할 때, 그것은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음을 곧 알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아직껏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중사의 기록을 갖지 못하였 고, 또이 방면의 관심마저 일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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