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크하르트의 역사관에 대하여
우리는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해서 듣고 배운다. 역사는 인간사회가 거쳐 온 변천의 모습, 또는 그 기록을 뜻한다. 우리가 현재 배우는 역사철학은 이런 역사적 변천의 모습을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반성하며, 어떤 원리에 의하여 그 역사적 흥망의 자취를 설명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기술학에서 비롯하여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역사철학적 사유가 가능케되고 헤겔과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고전적이며 근대적인 전개과정을 보인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역사철학적 사유의 위기를 겪게 된다.
이 글에서는 역사철학적 사유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역사철학의 위기를 지적한 대표적인 역사가 부르크하르트의 역사관에 대해 알아보겠다.
우선 간략하게 그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자. 부르크하르트는 1818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나 목사보좌의 4남으로 출생해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12세가 되던 해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그 해에 그의 집안은 질병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유년시절의 고난과 슬픔은 그에게 인간의 삶은 불안정한 것이며 덧없는 것이란 인상을 깊게 심어주고 후일에 19세기의 문화를 쇠락해가는 것으로 파악하며 역사발전을 비관주의적으로 관조하게 만든다. 바젤대학에서 교수자격을 획득한 그는 산업혁명을 통한 시민계급의 급진주의와 과격한 노동운동을 비판하고 전통을 변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콘스탄티누스의 대제」,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 「르네상스의 역사」를 저술하여 명성을 얻던 그는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사양하고 바젤대학의 교수로서 만족하고 79세에 생애를 마쳤다.
그의 개인적 정신적 특성은 소극적, 회의적, 비행동적이었다. 그는 그 시대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어떤 열광도 느끼지 못했고, 참여하지도 않았다, 중립국인 스위스의 작은 도시 바젤에서 강대국들의 민족주의와 국제적 대립상황 속에서 정치․사상․학문적으로 초연하는 한편 유럽역사를 조용히 관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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