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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 - 푸슈킨 [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6.6 ~ 1837.2.10]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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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쉬킨(1799~1837)
뿌쉬킨은 1799년 5월 26일. 모스크바의 600년전통의 오래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친가쪽의 선조들은 알랙산드르 야로슬라비치 네프스끼 시대이래 대대로 러시아 왕실에서 벼슬을 했다. 부친은 퇴역장교로 문필활동을 했으며 모친은 아프리가 출신의 한니발 장군의 후손이었다. 뿌쉬킨의 외증조할아버지, 곧 뿌쉬킨 어머니의 할아버지는 이디오피아 출신 흑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표뜨르대제의 총애를 받으며 한니발이라는 이름까지 하사받고 러시아 여인과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게 되었는데 그 아들 중의 한 명이 낳은 딸이 바로 뿌쉬킨의 어머니였다.
1811년 뿌쉬킨은 가정교육을 끝내고 귀족 학교의 학생이 되었다. 짜르스코예 셀로라고 불리는 귀족학교는 러시아에 하나밖에 없는 특권층을 위한 학교로 미래의 관료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그 학교는 10세에서 14세 사이의 귀족 자제에게만 입학을 허용하였다. 귀족 학교의 교육 이념은 당시 진보 정치를 펼친 재상, 스뻬란스끼의 이념을 따르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젊은 뿌쉬킨은 처음으로 영혼과 정신의 자유에 대해 배웠다. 귀족 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132편의 시를 썼다.
귀족 학교를 졸업한 뿌쉬킨은 규정에 따라 외무성에서 일하게 된다. 실제로 그는 경기병 연대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10등관 관리로 외무성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을 하는 대신 그는 문학활동에 몰두하여 ‘푸른램프’등의 문학써클에 활동하면서 정치적인 시를 발표하고 제까브리스트 당원들과 친밀한 유대를 갖는다. 특히 차다예프와는 우정을 통해 강하게 결속되었다. 그사이에도 [루슬란과 류드밀라]라는 6편으로 구성된 낭만적인 서사시를 써서 1820년 봄에 발표하였다. 이 시는 러시아는 당시 몇 십 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비극적이고도 영광스러운 사건(제카브리스트 봉기)이 일어나기 직전의 어수선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당시 젊은 뿌쉬킨의 삶의 중심이 된 것은 사랑 과 자유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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