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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발표,조직결성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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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인혁당
형 확정 18시간 만에
사형
1975년 4월 9일 사법부도 함께 죽었다.
국제법학자회 “한국의 4월 9일은 사법암흑의 날이다”
故 이수병씨 유언장 中 “…내가 죽는 이유는 민족민주운동을 한 죄 뿐이다”
INDEX
1. 조직결성과 활동
1. 조직결성과 활동
▶민청학련(전국 민주청년학생 총연맹)
1973년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에서 시작
유신반대시위
전국 대학으로 퍼져나감
▶박정희 정권 초강경 처벌
계속되는 시위에 학생 전원 석망
반유신투쟁의 본격적 시작
▶박정희 정권 긴급조치 제 1호 선포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열의를 막을 수 없었다.
▶ 긴급조치 제 4호 선포
유신헌법 비판행위 시 사형에 이른다.
1. 조직결성과 활동
▶1962년 2월 인민혁명당 창당
전 혁신계 일부 인사와 현직 언론인 및 대학 부교수, 강사, 학생 등으로 조직
▶ 참가인원
사회 김상한, 통일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장 우동읍, 민주민족청년동맹 도예종, 빨치산 출신 박현채 등
▶ 책임위원 도예종 임명
민주민족청년 경상북도 간사장이던 도예종을 중앙상무위원회 책임위원으로 임명
1. 조직결성과 활동
▶ 1963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당선
한일국교 정상화 추진
▶ 1964년 한-일 회담 추진
경제개발을 위해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내고자 김종필을 내세워 한-일 회담을 타결
▶ 대학가 중심 반대 시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대학이 연합하여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진행
▶ 계엄령 선포 6.3 사태
시위가 격화되자 서울시 전역에 계엄령 선포
1. 조직결성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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