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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개론 - 명 마지막 황제 숭정제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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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마지막 황제 숭정제
1. 숭정제의 즉위
2. 숭정제의 치적
3. 체면을 목숨이나 나라보다 중시했던 망국지군
4. 명나라의 비참한 최후
1. 숭정제의 즉위
천계제 주유교는 16세에 등극하여, 7년간 황제를 지냈다. 천계7년 8월 22일 자금성 건청궁에서 사망하였고, 그때 나이가 겨우 23세때였다. 천계제는 재위 7년간 목수같이 살았고 황제 같지는 않았다. 그는 목수일에 재미를 붙여 침식을 잊을 정도였으며 국가대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이런 연유로 위충현을 위시한 엄당(환관)들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가 죽은 후 황위는 아들이 승계해야 하지만 천계제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으나, 그가 죽을 때는 세아들 모두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요절하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천계제의 동생중에서 골라야 했다. 천계제의 동생들 상황을 살펴보면, 천계제의 아버지인 태창제에게 아들은 7명이 있었지만, 그 중 다섯 아들이 모두 8살 이전에 요절했다. 남은 사람은 다섯째인 주유검이었다. 그리하여 숭정제가 즉위하게 된다.
2. 숭정제의 치적
숭정제가 즉위할 당시(1627) 명 왕조는 연일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그는 먼저 황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희종의 총애를 받아 국정의 실권을 쥐고 있던 환관파(宦官派)의 거두 위충현(魏忠賢) 세력을 제거하였다. 그 후 숭정제는 국정개혁을 단행하고 서양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기독교인이면서 수리(水利), 목화, 농업 등의 농정(農政)에 능통한 서광계(徐光啓)를 예부상서로 임명하였고, 그 외 동림파(東林派) 관료들을 등용하여 국정개혁을 보필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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