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헬레보르스를 찾아서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는 한겨울에도 눈이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들과 나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으면 하는 소망은 일찍이 접고, 바람에 흩날리는 진눈깨비라도 왔으면 하고 간절히 빈다. 손바닥에 닿으면 사르르 녹아버리는,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눈! 그런데 겨울만 되면 첫눈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바램과는 달리 요즘들어 부쩍 눈이 오는 횟수는 더 줄어들고 말았다. 아니, 아예 눈이 오지 않는 겨울도 있었다. 이런 나에게 ‘그해 겨울엔 눈이 내렸네’ 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표지도 예쁘고 신비로웠으며, 겉껍질을 벗기면 마치 눈처럼 하얀 속살을 내비치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처음 책을 집어들었던 건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책의 내면에 얼마나 열광하고 감탄할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나는 특이하게도 본의아니게 이 책을 옥수수를 먹으면서 보게되었다. 내가 옥수수알을 코로 넘기는지, 입으로 먹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나의 감정을 세바스찬의 생각과 일치시키기 위해 모든 감각을 총동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상 그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병마와 싸워보기는커녕, 입원경력 한 번 없는 아주 튼튼한 아이이다.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정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시골이라는 정겨움에 심취할 줄도 모르는, 파리에서의 세바스찬처럼 도시에 젖은 말그대로 도시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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