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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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沃坡 이종일(李鍾一) 선생
1858. 11. 6~1925. 8. 31
․제 76주년 3․1절계기 민족대표 33인중 한분
․서거 70주년 추모
․언론구국계몽운동 전개
․62.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오늘에 이르러 봉건의식을 벗어나 「신촌정신」을 특별히 강조하는 뜻은 먼저 「정신을 개조」하고 그 다음에 물질의 풍요가 뒤따라야 되기 때문이다.
(至於今世,脫封建意識,特立新村精神先改精神,則後隨物質之農盛也)
- 1898년에 작성된 옥파선생의 「비망록」 중에서 -
충남 태안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신동으로 알려지다
1858년 11월 6일 충남 태안군 원북면(遠北面) 번계리(磻溪里)에서 성주(星州)이(李)씨 교환(敎煥)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옥파(沃坡), 천도교 도호로는 묵암(黙菴)이다.
성장하면서 두뇌가 영특하여 인근 마을에서 신동이라 불리울 정도로 칭송이 자자했다. 어려서 향리에서 한문을 수학한 선생은 15세가 되던 해인 1874년에 사서삼경을 통달하고 부모습하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2년 8월 박영효(朴永孝) 수신사의 사절단 일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유신 이후 쇄국에서 깨어나 서양문명을 받아들여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의 개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귀국후 선생이 간직하고 있던 유교사상(儒敎思想)에서 탈피하여 실학을 접하게 되면서 개화의식이 점차 싹트기 시작했다. 1896년에 독립신문에 논설을 집필하여 선생의 실학과 개화사상을 나름대로 피력함으로써 국민들의 개화 의식을 고취 시키는데 노력하였다.
대한제국 민력회를 조직, 회장에 취임하여 민권운동을 전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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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보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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