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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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健齋 정인승(鄭寅承) 선생
1897. 5. 19~1986. 7. 7
․1936.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
한글 맞춤법 통일안 수정 및 기초위원
․1937.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편집․발행인
․1942.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피체
․1945. 징역 2년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으로 출옥
․1957. 한글학회 큰사전 완성
말은 그 겨레의 정기와 정신을 지켜주는 그릇이며, 겨레정신은 그 겨레의 부다. 일제시대에 일본사람들은 우리 겨레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우리 겨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우리말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 1979. 5. 7 연세춘추 기자와 대담시 -
선생은 대한제국이 성립되던 해인 1897년 5월에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溪北面)에서 한학자인 아버지 정상조(鄭相朝)와 어머니 송성녀(宋姓女) 사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호는 건재(健齋)이다.
선생은 1915년 9월에 전라북도 진안군에 위치한 용담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신학문을 체계적으로 배우기까지 향리에서 한학자인 한응수에게 한문을 익히기도 하였다. 용담보통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서울에서 연정학원(硏精學院)과 중동학교(中東學校)를 거쳐 내자동에 있는 종교(宗橋)예배당 영어 강습소에서 영어를 배우기도 하였다. 그 동안에 한국은 일제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고, 일제는 한국을 자신들의 영구적인 식민지로 만들고자 정치․경제․문화 등의 모든 방면에서 한국을 억압하고 수탈하기 시작하였다. 일제의 이러한 문화말살 정책에 대항하여 우리 교유 문화의 파멸을 막는 방법은 우리 교유의 말과 글을 지키고 연구, 발전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선생은 연회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한글 연구에 진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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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보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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