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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루소에밀을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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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루소의 생애
루소는 1712년 6월 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프로테스탄트인 시계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루소가 태어난 지 불과 10여일만에 돌아가셨다. 그의 가족은 종교분쟁으로 인해 프랑스에서 스위스 제네바로 이민해 와서 살았다. 일곱 살까지는 집에서 방탕하고 우매한 성격의 아버지와 함께 보냈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양육에는 무관심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루소에게 소설류를 탐독케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플루타아크 영웅전이었다. 비록 체계적인 독서는 아니었으나 이대의 독서가 후일 대사상가의 기초를 마련한 계기가 되었다. 루소가 열 살 때에 아버지가 그 지방민과 싸움을 벌려 결국 제네바를 떠나야 했다. 이 때문에 루소는 백부의 집에 맡겨졌으며 얼마 후 어머니의 친척집에서 긴교의 목사 랑펠세 아래서 교육을 받았다. 그 후 어떤 변호인의 집에서 견습생황을 하였으며, 다시 조각의 견습공으로 일하다가 1728년, 열 여섯 살에 조각가의 집을 뛰쳐나와 여러 지방을 방랑하면서 많은 모험을 하였다. 이 때에 바랑 부인을 만나 그녀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 부인은 개종자로서 젊고 아름다웠으며 매우 지성적이었다. 루소는 이 부인과 동거생활을 하면서 그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 시기에 루소는 고전, 철학, 음악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하였다. 또한 이 부인의 알선으로 이탈리아 트리노 수도원에 입소하여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영세를 받았다. 그해 6월, 수도원을 떠나 다시 방랑생활을 계속하였다.
1741년 신 악보 기재법을 발명하여 출세하려는 야망으로 파리에 갔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그 대신 학계의 각계 각층과 교우을 맺었는데 그들은 마니보, 퐁뜨넬 등이었다. 그들은 친분으로 사교계에 소개되고, 또 ‘백과 전서’에 음악론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746년 그가 거처하고 있던 집의 하녀 테레즈 르봐쇠르와 관계를 맺고 다섯 자녀를 얻었는데 모두 고아원으로 보냈다. 이것이 그의 일생에 고뇌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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