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어느날 나는 경제적 핍박자들이 몰려사는 재개발 지역 동네에 가 철거반―그들은 내가, 집이 헐리면 당장 거리에 나앉아야 되는 세입자 가족들과 그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데 철퇴로 대문과 시멘트담을 쳐부수며 들어왔다―과 싸우고 돌아와 작은 노트 한 권을 사 주머니에 넣었다. 난장이 연작은 그 노트에 씌어지기 시작했다.
작가 조세희(56)씨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관한 어느 회고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1975년 겨울부터 발표되기 시작해 78년에 단행본으로 묶인 이 연작은 최인훈씨의 <광장>과 함께 올 초 1백쇄를 넘어섰다. 이는 이 책이 20년 가까운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기고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는 뜻이 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합쳐 12개의 독립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이 연작의 어떤 점이 그토록 독자를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문장과 감수성으로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그늘진 삶을 그렸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겠다.
전쟁의 상흔과 아픈 기억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60년대 후반부터 작가들의 시선은 진행중인 삶의 불구성을 향하기 시작했다. 황석영씨의 <객지>와 같은 예외를 빼고는 아직 노동자의 삶이 작가적 관심의 중심으로 진입하지는 못했지만, 도시빈민들의 처지는 농민문제와 더불어 60, 70년대 작가들의 중요한 테마의 하나였다.
난장이 연작의 의의는 대규모 공장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억압과 착취의 실태를 정면으로 문제삼았다는 것과 함께, 도시빈민을 다루되 기존의 사실주의 내지는 자연주의적 기법 대신 모더니즘의 방법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현실의 모순을 천착하면서도 사실주의의 획일성을 피하려는 실험과 갱신의 정신이 이 작품을 진정 새롭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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