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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군의 집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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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군의 집강소
1. 집강소의 기원
반봉건항쟁을 기치로 제1차 봉기를 일으킨 동학 농민군은 정부와 전주화약이 성립된 후 대부분의 농민은 철수하고 동학군은 폐정개혁의 실시를 위하여 전라도 53군에 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 집강소의 기원에 대하여는 종래 행정조직에 속하던 「이이 집강」을 군현단위로 격상시킨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전주에서 동학농민군이 해산하면서 촌촌설포를 구호로 그들의 조직을 각지로 침투시키면서 종래 향촌사회에 존재해 있던 조직을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2. 집강소의 설치와 승인
집강소의 설치에 대하여는 전주화약 후 자진 철수한 농민군이 각 군에 설치하였다는 주장과 기존에 존재하던 마을의 집강을 동학군들이 끌여들인 것이라는 견해로 나누어진다. 집강소는 전주화약(1894.5.8) 이후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의 군의 경우 5월말 이전에 설치가 되어 6월 전라감사 김학진은 집강소의 설치를 사후승인하게 된다.
3. 집강소의 조직 및 주체세력
집강소에는 한 사람의 집강과 그 밑에 서기 등 몇 명의 임원이 있고, 전봉준은 전주에 집강소의 총본부인 대도소를 두고 이를 총지휘하였다. 집강은 조선시대에 모든 조직에 기율을 담당하는 직책이었는데, 동학군의 집강은 군현단위로 농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그전까지의 계와 향약, 면과 리, 종교단체 등에 존재한 부농중심의 집강과는 다르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보다는 향촌 사회에 종래부터 있던 것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집강소의 조직 내에는 별도의 의사기관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보다는 집강소 자체를 접주들이 모여 당면 문제를 협의하던 하나의 협의체로 파악함이 옳을 것이다.
4. 집강소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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