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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육신과 사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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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육신과 사육신
Ⅰ. 단종의 왕위계승과 수양대군의 야심(계유정란)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고 세자가 나이 어린 것을 염려하여 황보 인·김종서 등에게 세자가 즉위하여 왕이 되었을 때의 보필을 부탁하였다. 한편, 집현전의 학사인 성삼문·박팽년·신숙주 등에게도 좌우협찬을 부탁하는 유언을 내렸다.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은 재위 2년만에 승하하고, 1452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수양대군은 권남·한명회·홍달손 등 30여 인의 무인세력을 휘하에 두어 야망의 기회를 엿보다가, 53년 10월 무사들을 이끌고 김종서를 살해한 뒤 사후에 왕에게 알리고 왕명을 빌어 중신들을 소집, 영의정 황보 인 등을 궐문에서 죽이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킨 뒤 賜死하는 등 3公을 숙청한다 (계유정난). 이와 같이 일거에 실권을 잡은 수양대군은 軍國의 모든 권리를 장악하였으며,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었다. 55년 단종을 보필하던 중신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던 한명회·권남 등에게 강요되어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上王이 되었다.
Ⅱ. 단종복위운동과 생육신·사육신
56년에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등은 단종의 복위를 결의하고 그 기회를 살피고 있던 중, 본국으로 떠나는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과 유응부과 국와 양쪽으로 칼을 들고 지켜서는 운검이란 것을 하게 됨을 기화로 세조일파를 처치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이 사실이 누설되어 계획은 좌절되었다. 이들의 계획이 일단 좌절되자,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이 성사가 안될 것을 우려하여 세조에게 단종복위음모의 전모를 밀고하여 세조는 연루자를 모두 잡아들여 모두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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