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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인간과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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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序 言
전통시대의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의 사상 및 문화 전반에 걸친 孔子의 영향력을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면, 孔子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수많은 논저들이 제시한 孔子상은 반드시 일치된 것만은 아니었다. 孔子를 가장 극단적인 보수반동가로 이해한 것으로부터 과격한 혁명가로 해석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견해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孔子사상은 봉건사상의 총화이며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철저하게 배격 청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현대사회에서도 孔子사상은 적극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따라서 계승 실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견해의 차이는 일차적으로 孔子 자신이 자기의 사상과 주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서를 남긴 일도 없었고, 더우기 孔子의 사후 발전해 온 각종 孔子의 설화 및 중국사회의 변화에 따른 孔子에 대한 상이한 이해가 계속 누적된 결과, 孔子의 진면목을 확인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라 하겠다. 본 글에서는 儒家발생과 漢王朝代 이후의 儒家의 변질, 개혁가로서의 孔子, 다른 학파와 儒家의 대비, 서구 근대사상과 孔子사상 등을 중심으로 종래의 說과는 다른 모습의 孔子를 제시한 creel의 이론을 살펴보고자 하며, 미숙하지만 본인의 비판도 덧붙이려 한다.
II. 儒家발생과 漢王朝代 이후의 儒家의 변질.
春秋戰國時代 당시 중앙권력은 이미 붕괴되었고, 봉건제후들은 왕에게 단지 명목적인 충성만 표시하였다. 내외전쟁이 부단히 계속되었고, 법과 질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귀족들은 향락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였으며, 모든 항의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孔子는 이러한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고 그것을 시정하기 위해 일생을 바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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