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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의 좌표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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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의 좌표와 방향
Ⅰ. 문제 제기
우리는 인간이 예술적 작업을 통하여 자신의 실존의 의미를 확인하고, 더 나아가 장차 존재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예술이란 것이 인간에게 실존의 고양된 형태를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그것에 따라서 살아야 되는 삶의 이상적인 형태를 예술이 제공할 수 있을까. 고전과 낭만의 세계관 속에서 예술가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예술가적 존재의 특별성은 아마도 그들의 사명의 분명함에서 연유하는 것이리라. 독일의 시인 횔더린은 궁핍한 시대에서 시인의 사명은 무엇인가를 절규하면서 사회에 대하여 갖는 예술가의 특별한 의미를 강조한다. 그리스적 의미에서 신들이 떠나 버린 시대, 그래서 정신이 궁핍해진 시대에 신성(神性)을 복구하고 정신성을 심화시키려는 예술가의 사명은 사회 속에 파라다이스를 재건설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이 역사 이래로 상실한 파라다이스를 역사적 현재와 미래의 시간대 속에 다시 가져다 주려는 시도 속에서 예술가의 사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예술을 오해하지 않는 그 사회의 건강함에 대한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대의 시점에서 볼 때 예술과 사회의 상호 이해라는 것은 그야말로 순수한 낭만의 극치인 것이다. 현대의 예술가는 그 본질에 있어서 대중으로부터 이해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익명의 운명을 홀로 짊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예술가는 모든 사람이 그의 옆을 지나가야만 하는 길목에 있으면서도 아무에게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활기찬 삶만을 긍정하고 경탄하는 현대의 길목에서 그는 훼방꾼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자기 실존의 정당성과 순수성을 무한대로 증명해 보이려고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말하자면 예술가와 사회 대중 사이에는 오해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에서 예술의 기능이 상실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예술의 사회에 대한 역기능성이 고도로 확장될 때인 것이다.
Ⅱ. 현대 예술의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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