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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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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향기'
'체리향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영화는 '본다'라는 표현보다는 '읽는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한편의 에세이집을 읽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속에서 영화를 보았다.
연애 시절, 조금 높은 언덕 위에 서면 발아래 보이는 불켜진 창들이 그렇게 따뜻하고 안온해 보일 수 없었다. 사랑한다고 믿는 우리 두 사람이 같이 살면서 저런 불을 밝힐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 불빛은 늘 아직은 갖지 못한, 그래서 내 것이 될 것 같지 않은 막연함으로 다가오곤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의 산책로를 걸으며, 혹은 나무 밑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불켜진 아파트 창들을 올려다본다. 아, 나처럼 다들 저렇게 불 밝히고 사는구나. 나처럼, 우리처럼 저들도 때론 웃고, 때론 울며, 때론 감사와 행복으로, 때론 고통과 절망으로 하루의 삶을 마감하고 있겠구나 생각하곤 한다.
여기 죽고 싶은 한 남자가 있다. 나무 아래 구덩이는 이미 준비해 놓았고, 수면제를 먹고 그 구덩이 안에 누우면 끝이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난 내 몸을 흙으로 덮어줄 사람만 있으면 된다. 누가 그 일을 해줄까…. 남자는 차를 몰고 길을 나선다.
시신 위로 흙 스무 삽만 퍼서 덮어주면 군인의 6개월치 급료가 넘는 20만 토만을 주겠다고 하지만, 앳된 얼굴의 군인은 거절을 하더니 도망가 버린다. 학교에서 근로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하고 있는 젊은 신학생은 죽음을 도와줄 수는 없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며 설득하려 드는 신학생에게 남자는 이야기한다.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관심을 보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당신이 이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러면서 불행하게 살면서 주위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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