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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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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근세교회사를 논하기 전에 근세의 기점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세속사적으로 본다면 근세는 14세기 이태리의 인문주의자인 페트라카(Petrarca)에 의해 시작된 문예부흥이 기점이 된다.1)1).김광채 著, “근대·현대교회사”, 기독교문서선교회:1990 , p.22.
이 입장을 따른다면 종교개혁시대는 당연히 근세에 포함되는데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종교개혁의 중요성이 크기에 종교개혁사가 중세와 근세 사이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근세의 시초로 보는 견해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의 시대까지 중세의 잔재는 남아 있었으며 칼빈마저도 중세적인 신율적 신정정치를 옹호하고 실천했던 것을 본다면 중세의 terminus ad quem은 훨씬 뒤로 밀려난다. J.Huizinga는 “중세의 가을”이라는 책 속에서 르네상스를 근세의 시작이라기 보다는 중세의 끝이라고 보기까지 한다.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는 모두 강력한 개인의식과 자본주의의 성장 그리고 중세교회의 비판으로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 둘 사이에는 공유하는 점이 많지 않았다.2)2).민석홍,나종일 共著.,“서양문화사”,서울대학교출판부:1985, pp.159-60.
즉, 르네상스의 본질은 현세를 즐기고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었으나 종교개혁은 내세를 중시하고 육신보다는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었다. 르네상스가 부흥시키려는 것이 그리스·로마라면 종교개혁자들이 부흥시키려는 것은 바울과 어거스틴인 것이다. 무엇보다 르네상스는 중세의 구조를 인정했다면 종교개혁은 중세제도와 교리를 철저하게 뒤엎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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