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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의 형성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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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근대문화의 형성과 발전
1. 서구문화의 수입과 메이지유신
(1) 개국과 막말의 동란
1840년대에 청이 영국에 패배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에도막부의 쇄국정책이 완화되던 중, 1853년 6월과 1854년 1월 두차례에 걸쳐 미국동인도함대사령관 페리제독이 내항하여 함대의 위력을 배경으로 막부에 개국과 통상을 요구하자, 막부는 이 문제를 천황 조정과 다이묘들과 의논하였다. 당시 여론은 개국반대 의 양이(攘夷)론이 우세하였으나, 페리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막부는 1854년 3월 미일화친조약을 맺어 시모다(下田)·하코다테(箱館)의 개항과 미국대표의 일본주재를 인정하였다. 이어 영국·러시아·네델란 드등과도 같은 조약을 맺어 일본의 쇄국체제는 끝나게 되었다.
1856년에 총영사로 부임한 해리스는 중국정세를 막부에 설명하여, 1858년 6월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 는다. 이 조약은 영사재판권이 인정되고 일본에게는 관세자주권이 없는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막부는 이어서 네델란드·러시아·영국·프랑스와도 같은 내용의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1859년 무역이 개시되어, 생사나 차·금등이 수출되고 모직물·면직물·함선·무기등이 수입되었다. 수 출품의 격증과 대량의 금의 유출로 인한 경제의 혼란은 하급무사와 민중의 생활을 압박하였다. 일부 다 이묘와 무사들은 외세를 배격하고 천황의 권위를 회복하자는 존왕양이(尊王攘夷)론을 주장하였다. 막부 의 타이로(大老)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는 반대파를 처벌하여 막부독재를 강화하였으나, 반대파에 살 해되고, 막부는 천황 조정과 결합하여 막부정치의 안정을 꾀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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