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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이승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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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李昇薰)
I. 생애와 사상
1811년 정주성(定州城)에는 홍경래란(洪景來亂)이 있었는데 한때 폐허로 있다가 차츰 인가들이 모여들어 10년 후에는 다시 옛 성읍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철종 3년 임자년 가을에 선천(宣川)에서 여주 이씨(驪州 李氏) 한 가난한 가정이 정주읍의 조그만 집에 이사왔는데, 젊은 내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여기에 온 것이다. 남강은 1864년에 이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여주 이석주(李碩柱)요, 어머니는 홍주 김씨(洪州 金氏)인데 남강은 그 둘째 아들이었다. 그가 세상에 났을 때는 가정에 심한 가난이 휩쓸었다. 아버지는 조촐한 가정에서 자라기는 했으나 어려서 경서를 읽었고 글씨도 깨끗이 썼다. 그는 성읍 언저리의 조그만 초가집에 살았는데 남의 글이나 써주고 집에 붙은 터밭을 가꾸는 외에 별로 하는 일이 없었고 아내가 품팔이를 해서 살아갔다.
남강이 여섯살 되는 해에 아버지는 정주읍에서 동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납청정(納淸亭)으로 이사를 하였다. 정주읍에서는 살 길이 막연하고 자기 나이도 먹고 어린 것들도 자라고 하니 새로운 운을 바라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납청정이란 곳은 서울서 의주(義州)에 통하는 가도의 중요한 곳으로, 그 당시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상당히 발전되었으며, 더우기 이 곳은 그 때 지방의 공업지로 알려졌는데 경기도의 안성과 같이 유기 제조업의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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