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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띠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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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띠 오이디푸스
서론
‘내가 말하는 역사는 다가올 두 세기의 역사이다. ....’
니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어느새 허무의 계곡 속에 깊이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두가지의 앎, 바닥이 보이지 않는 허무의 계
곡에 들어와 있음을 긍정하는 것과 그것의 극복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것 사이에는 어떠한 논리
적 연관성도 지금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다.
이 소고는 “앙띠 오이디푸스”의 중요한 주제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공간”이 “앙띠”의 연장선상에서 쓰여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 같다.
communism의 분자적 인간들의 공동체로 재규정하고
분자적 인간들의 공동체를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 를 찾아가는 과정이 “공간”이라면
어떻게 분자적 인간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적일 수 있는가를 심리-경제학적 관점에서 밝히는
것이 “앙띠”라고 할 수 있겠다.
“앙띠”는 정신과학적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전문적인 저서이다. 따라서 프로이트, 라깡 등에 대한
약간 심도 있는 이해가 없이는 독해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겠다.
나 자신은 전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였을 뿐더러 세세한 부분들 중 난해한 것들은
번역상의 문제를 떠나서, 읽어나가는 것만도 무척 힘이 들었다.
이것은 원래 발췌문으로 기획되었지만
진행중에 발췌문만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들의 재배치를 통해서 얼마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필자주는 미약하나마 이해를 돕기위해서 내가 덧붙인 것들이다.
아무쪼록 앞으로 뛰어난 후배들이 미련한 이 소고를 질타하고 “앙띠”를 넘어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앙띠”의 주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유물론적 인간관의 정립 - 욕망하는 기계로서
2. 상실된 자아와 주변으로서의 주체
3. 욕망하는 생산과 사회적 생산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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