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보수주의의 삭감정책은 성공했는가
1. 새처의 선택
최악으로 치닫는 영국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에 힘입어 1979년 집권에 성공한 마거릿 새처는 경제를 살려야 하는 시급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때 새처의 선택은 ‘자유경제와 강한국가’로 요약되는 신보수주의적 국가이자, 케인즈주의를 대체하는 통화주의적 경제정책이었다.
케인즈주의의 부정이라는 점 만으로도 새처의 전환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하다. 완전고용과 계급타협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임금(social wage)으로서의 복지를 배격하고, 냉혹한 경쟁의 논리와 소유적 개인주의를 주창한 새처는 공공지출의 삭감, 공공적자(PSBR)의 감축, 민영화와 규제완화, 세금인하를 약속했다. 이는 분명 기존의 복지정책을 구빈법수준의 잔여적 범주로 축소시킬 법 하였다.1)1) 완전고용은 국민 모두를 복지의 재원조달자인 동시에 수혜자가 되게 함으로써 복지를 정당한 권리로서 인식케 하고 복지국가에 대한 여러 계급의 지지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복지가 생활 보장의 완벽성에 근접할때 ‘탈상품화’가 진척되는 것인 바, 새처의 새로운 복지정책은 이를 재상품화시키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들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새처는 직접세 대신 간접세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세금인하를 눈가림하면서(표1 참조), 공급을 중시하는 통화주의를 따라 통화량 조절, 즉 공공적자 감축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놓게 된다. 이 선택의 즉각적 효과는 불황, 즉 실업의 증대와 취약산업의 도태였다.2)2) 이때 치명타를 입은 부문은 제조업과 내수산업이다. 영국은 대영제국 이래 금융자본과 다국적기업이 강세를 보여왔고, 이들의 국내투자 부진이 영국경제의 위기를 가져온 큰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새처는 이를 오히려 부추긴 셈이다.
(표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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