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방의청동기에대한논의와해석
嶺南지역의 靑銅器에 대한 論議와 解析
1. 머리말
지금까지 영남지역에서 조사된 청동기 자료는 한반도 다른 지역보다 늦어서 철기시대 전기, 중기에 집중되어 있다.1)1) 이 시대는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 혹은 철기시대 전기와 삼국시대 전기로 구분되어 왔었다. 이를 철기시대 전기(기원전 3-2 세기), 중기(기원전1세기 -기원후 1세기) , 후기(기원후 1세기-기원후3세기)로 구분하고자 한다. 삼한으로 보면 전, 중,후기 단계와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는 三國志 기록에 소개되는 辰弁韓 小國이 형성되는 시기로서 이 시기에 속하는 청동기와 그 副葬墓는 당대 사회를 밝히는데 중요한 준거틀을 제공한다. 이 시기의 사회는 國의 형성과 君長社會2)2) 지석묘는 족장사회, 적석목관묘는 군장사회와 관련하여 접근하고자 한다. 각각 최몽룡, 김정배의 설을 수용한 것이다. 최근에 최몽룡은 같은 chefdoms society를 족장 또는 군장사회로 이해하고 족장사회는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전기, 군장사회는 삼국시대 전기에 비정한 바 있다. 최몽룡, 2001, <21세기의 한국고고학 :선사시대에서 고대국가의 형성까지>,《한국사론 30》 21세기의 한국사학, 29-66쪽
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될 수 있는 데, 여기서는 國과 관련하여 이 시기의 청동기에 대해 접근하고자 한다.
國의 형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최근에 사회적인 측면에서 청동기 부장묘를 位階化시켜 사회의 階層化, 複合化 과정을 다루는 것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국의 형성은 문헌기록에서 엿 볼 수 있듯이, 경제적, 종교적 측면에서도 접근될 수 있다. 다행히 이러한 측면에서도 접근 한 예도 있으므로 , 이들 논의를 망라하여 향후의 연구 주제와 방향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동안 이 지역의 청동기 자료의 수집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 대부분은 무덤과 관련된 자료이고, 생산과 관련된 자료는 全無한 상태이다. 종교나 祭祀와 관련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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