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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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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원의 『迂書』
- 목 차 -
1. 유수원의 생애
2. 『우서』의 구성과 그 개요
3. 『우서』의 구체적 논의
4. 『우서』의 결론부 - 이러한 법도들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인가
# 참고문헌
1. 유수원의 생애
유수원은(柳壽垣, 1694-1755) 18세기 중엽에 탁월한 개혁서적인 『우서(迂書)』를 저술하였던 불우한 학자로서, 호는 농암(聾菴)이요 자는 남로(南老)였다. 그는 1694년(숙종 20)에 충청도 충주에서 아버지 유봉정과 김징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어 서울에서 벼슬을 살았던 친척의 집에서 외롭게 자라났다. 특히 그는 증조부 유상원이 이조판서(吏曺判書), 조부 유상재가대사간, 그리고 종숙(從叔) 유봉휘가 검열(檢閱)의 벼슬자리에 올랐을 정도로 이름난 소론계열의 명문가계를 배경으로 태어났었다.
유수원은 비록 그의 스승이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21세의 젊은 나이(1714년, 숙종 40)에 이미 진사벼슬에 올랐으며, 곧 이은 25세 때에는 문과에도 합격하였다. 그의 학문적 계보는 정몽주에서 이황으로 이어지는 학풍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후 그의 벼슬길은 매우 불우하였다. 벼슬길에 들어선지 겨우 5년째가 되던 1723년(경종 3) 2월에 유수원은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의 자격으로 영의정을 탄핵하고 조정의 혁신을 요망하는 글을 경종에게 올렸지만, 원로대신을 함부로 비난하였다는 중신들의 성토를 받아 파직되었다. 하지만 그 때의 집권당은 소론이었기 때문에, 그는 같은 해 7월에 낭천현감으로나마 다시 임용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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