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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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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원균의 모함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하던 중 원균 함대가 전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어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분연한 마음으로 출정준비를 하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 나와 있던 이순신 전기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민족의 태양이요, 성웅이라고 말한다. 임진왜란 때에 나라를 구한 장군을 기리는 것은 당연한 사리에 속한다. 이에 비해 이순신 장군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원균은 가장 비열한 악인으로 그려져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도 그렇게 새겨져 있다. 선인과 악인을 철저하게 대비하여, 하나는 완전한 선인으로 하나는 완전한 악인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만 볼 수 있겠는가. 원균이 이순신, 권율 등과 함께 『선무일등공신』의 상을 받은 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한 졸장이자 패장인 원균에게 나라에서 3년여의 걸친 심사 끝에 일등공신이라는 칭호를 내렸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그 공적을 심사하는 공문도감의 위원장이 당시 당쟁에 초연하기로 유명한 이항복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상에 대한 의미가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원균 장군의 실제 모습을 여러 가지 자료를 토대로 다시 조명해 보고자 한다.
본 론
1. 원균이 간신으로 왜곡되어온 이유
1)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의 차이
문제는 당시 시정을 기록한 사초에 의하여 편찬된 <선조실록>의 내용과 후대인 인조 때에 일부 선별적으로 개조된 <선조수정실록>과의 내용이 동일한 사실의 평가에서 흑과 백의 상반된 거리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상반된 실록을 중심으로 관련 기록들을 추적하고 이를 분석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논리적 결과를 얻게 된다.
첫째, 선조수정실록은 실록으로서 그 가치성이 별로 없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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